영화이야기

[영화] 마더 (mother) directed by 봉준호 ... 작성중

에를렌 2009. 6. 7. 03:30

오랜만에 영화 감상평을 쓴다.
심야로 봐서, 센티멘탈해져서 그런걸까?
아니 영화가 너무 해서 그런 것 같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가득입니다.

영화를 보실 분이나 내용을 원치 않으신 분들은 여기서 발길을 돌리시면 되겠습니다>>>>



바보 아들, 원빈(극중 이름은 도준)과 살고 있는 어머니, 김혜자(극중 이름은 생각 나지 않는다, 어쩌면 전혀 언급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엔딩크레딧을 보지 않아서 모를 수도 있다)의 이야기다.

영화보는 내내 떠오르는 나의 어머니 이미지와 안타까움이 관람시간 내내 심리적 기저를 든든하게 받쳐준다. 제발, 이번만은, 그렇게는 안되지, 등등 안타까움과 슬픔이 영화보는 내내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하지만 마지막 롱테이크의 버스안 장면은 반추의 시간을 가져다 준다.

허벅지에 놓은 침 한번이 모든걸 잊게 해주는 마약이라도 되는 걸까? 마약이라고 생각하고픈 것이겠지. 그럴리가 없지 않는가? 그러면서 버스안에서 외로이 앉아있던 어머니는 천천히 춤추는 무리에 섞인다. 그 춤이 끝날 즈음에 모든 기억은 사라져 버리고, 관자놀이를 아무리 눌러도 기억나지 않을 망각의 늪으로 그간의 악몽을 밀어넣어 버린다. 바램일뿐이지만, 그게 잘 먹힌다.

이 영화의 키는 당연히 마더일까? 아니다. 억척스러운 마더가 주인공이다. 열심히 뛰어 다니고, 액션신에다 좌충우돌 부딪히지만 키는 아들이 가지고 있다. 당연한 걸까? 아들을 위해서 그렇게 뛰어다니는 것이니 당연할 수도 있겠다. 모든 열쇠는 아들이 쥐고 있는데..

그 어릴적의 기억.

열쇠라면 그것이다. 그 어릴적 농약먹은 기억은 도준에게 잊혀지지 않는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떠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 아들은 바보가 되어버린다. 농약이 바보를 만들어버린게 아니라 스스로 바보가 됨으로써 현실을 회피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누명?을 뒤집어 쓴 채 들어가 있는 교도소가 어쩌면 더 편한했을지도 모른다. 똑똑한 아들 도준은 그렇게 바보행세를 하면서 20년을 버텨온다. 그러다 사고가 터진다.

같이 동반 자살할려다가 실패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모자지만 마더 입장에서는 바보가 되어버린 아들을 항상 곁에 두면서 지낸다. 세상에 하나뿐인 혈육인데다, 해선 안될 일을 저지른 죄책감에, 바보로 만들어 버린 죄책감까지 겹쳐, 일할 때도 보이는 곳에 둔다.

영화의 극초반, 그렇게 애지중지 보살피던 아들이 길가에서 놀다가 지나가는 벤츠에 치일뻔한 일이 일어난다. 약초를 써는 작두 씬과 교묘학 오버랩이 되면서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린 감독의 역량이 놀랍다. 그 장면에 놀라서 뛰어나가지만 정작 다친건 작두에 손이 베고 만 마더다. 아들은 놀라서 넘어졌을 뿐.

자기를 위협하고 뺑소니 친 벤츠를 찾으러 주변의 골프장에 가서 친구인 진태가 그 벤츠의 백미러를 부순다. 그러다 실갱이 끝에 경찰서에 잡혀가지만 결국 벤츠 백미러를 부순 죄를 뒤집어 쓴 도준만 배상을 하는 판결로 그 실갱이는 끝난다. 다툼이라지만 결국은 바보한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워버린 것이다.

그러다 술을 마신 어느날 밤, 여고생 뒤를 쫓아가던 도준,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자는 모습이 끝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발견된 시체, 시체는 묘하게 옥상에 빨래처럼 걸려 있다. 그 살인의 누명을 쓰고 도준은 구속되고 만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 왜 취조받으면서 난 글 읽을 줄 안다고 하면서 도장을 그렇게 흔쾌히 찍었는지 이해가 된다. 아들에게는 그것만이영원한 탈출구였던 것이 아닐까?

거기서부터 마더의 좌충우돌 아들구하기에 들어간다. 친구인 진태를 의심해 찾아간 진태의 방에서 루즈 묻은 골프채를 훔쳐내서 경찰서에 가지만 결론은 피가 아니라 루즈였던 거나, 진태를 불러 죽은 아정이의 고등학교 친구들을 조지고, 변호사로 어찌 아들을 꺼내 볼려는 것, 결국은 아들이 봤다는 고물상 노인네를 찾아가는 등 백방으로 뛰어 다닌다. 힘겹고, 애가 타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초반에 나왔던 씬 중에 여자랑 자봤냐? 란 물음에 자봤다라고 대답하는 도준, 과연 누구랑 잤던 걸까? 중반에 술먹고 들어간 밤에 마더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누우면서 마더의 가슴을 만지는 장면은 근친의 암시가 아니었을까? 바보흉내를 내면서 아들은 마더의 피를 말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쌀떡 소녀였던 아정의 마지막은 쌀을 받고 몸을 팔러간 그곳에서였다. 마지막에 밀려오는 안타까움에 슬픔이 이 아정의 아픈 기억 때문이지 않을까? 마더의 애절함이 영화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지배하는 감정이었다면 아정에 대한 측은함은 다른 한 편에서 중심을 받쳐주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범인으로 잡힌 종태를 보러가서 부모님도 없냐, 엄마도 없냐고 물어보면서 오열하던 장면은 이 영화에서 클라이막스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다른 장면을 찾으라면 아들이 엄마한테 어릴적 농약먹은 기억을 이야기 하는 장면이다. 그댄 정말 놀라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이번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은 클로즈업의 과도한 사용을 통해서 긴장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광각으로 찍어낸 샷이 없다. 기껏해야 진태의 집 아래 뚝에 숨어 있는 장면 정도일까? 클로즈업의 과도한 사용으로 극도의 긴장을 관객들에게 강요한다. 시종일관 긴장된 상태가 마지막 버스신에서 다 풀리고 만다. 지금껏 봤던 것들에 대한 반추의 시간일까? 더이상 삶에 대해, 아들에 대해 집착을 하기 싫다, 가슴이 꽉막힌 것 같은 응어리를 침 한번에 날려버리고, 마더는 또다른 일상으로 춤추며 들어간다.

감동과 전율의 영화임에 틀림없다.